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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여행 시작하기 본문
마카오(Macau, 澳門)는 중국 화난지방(华南地方) 에 속한 특별행정구 도시로 인구 약 50 만명의 작은 도시로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 콜로와네의 두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랫동안 포르투갈의 교역기지로 사용되어 왔던 터라 동양에서는 드물게 포르투갈 어를 사용하지만 현재 인구의 7% 만이 포르투갈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한다. 실제로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해 보기 위해서 포르투갈어로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호텔에서 조차 포르투갈어를 쓸 줄 아는 직원은 없었다.
마카오 - 서울에서 비행기로 3시간 30분 소요.
서울(인천) - 홍콩 행 비행기가 많이 취항해 있어 선택의 폭이 넓으므로 홍콩까지 비행기로 간 후에 홍콩에서 페리를 타고 마카오로 이동하는 루트를 생각해 보자.
1542년(명나라 시대)에 포르투갈의 교역 기지가 되었으며 대 중국 수출입 거점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타이완을 정복하기 전까지는 유럽인이 가진 유일한 중국 영토 내 -엄밀하게는 연안의 섬 몇 개가 전부지만- 의 상업 거점이었으며, 정성공이 타이완을 탈환한 뒤에는 다시 유일한 중국내 유럽 영토가 되었다.
"명나라 황제가 해적을 퇴치한 공로로 포르투갈인에게 마카오를 떼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건 18세기에 포르투갈인이 창작한 이야기. 사실은 1553년, 포르투갈이 "배의 화물이 젖어서 잠깐 말리고 싶다"는 구실로 명나라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마카오에 체류하기 시작했다. 1557년부터는 매년 뇌물을 주어 본격적으로 마카오에 체류했고, 1572년부터는 명나라 조정도 매년 500냥을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체류를 허용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이 본격적으로 마카오를 식민지화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
1842년 영국이 홍콩 섬을 난징 조약으로 따내고, 중국과 유럽 국가들의 직접 교역 시대를 열면서 큰 타격을 받아 몰락하였다. 홍콩이 영국의 통치 하에서 급속히 성장하였던 것과는 달리 쇠퇴하는 본국처럼 마카오는 점차 쇠퇴하였다.
1949년 중국이 공산통일 되자 인민해방군의 진주가 우려되었으나 중국군은 이곳을 공격하지 않았다.[1]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국경으로 몰려오자 포르투갈군이 총으로 쏘면서 방어했으며, 이는 마카오에서 최후로 일어난 전투였다. 영토 유지가 벅참을 느낀 살라자르 정부는 중국에게 반환을 하려 하였으나 당시 서방과 고립이 되어 있던 중국 정부는 마카오를 통해 통상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여 거부.
1974년 포르투갈 정부는 카네이션 혁명 이후 모든 식민지를 포기하기로 하였으며 마카오도 그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중국이 다시 거부. 준대도 싫다는건 대체 1984년 홍콩 반환조약 체결 이후 포르투갈 정부는 또 다시 반환 의사를 표명하였으며 결국 1999년에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하기로 결정되었다. 반환 이전 마카오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43만명은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받았다. 당시 천안문 사태로 크게 걱정하던 홍콩인들은 마카오인들을 엄청나게 부러워했다고.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은 유럽 최초로 세계 각지를, 일본에서부터 브라질까지, 항해하며 수많은 발견을 이루었었다. 1999년 12월 20일. 마지막 동아시아 거점을 반환하고 나서, 이들의 제국은 여기서 종점을 찍게 되었다. 유럽의 마지막 동아시아 거점이었던 마카오의 반환은 서구 열강 중심의 20세기는 막을 내렸으며 21세기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재차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중국으로 반환 이후, 정부의 조직폭력배 처벌 의지와 더불어 전반적 치안이 많이 안정되기 시작하였으며, 카지노 중심 일변도에서 조금씩 벗어나 배후의 경제특별구 주하이시와 더불어 여러 제조업이 성행하게 되었다. 2006년 홍콩을 처음 1인당 GDP에서 추월하였으며, 현재는 관광객 수조차 동등한 수준까지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소개된대로 오랫동안 유럽(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던 곳이라 중국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서양의 정취를 십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에서 경기를 치루던 포르투갈 국가 대표팀은 베이스 캠프를 이 곳 마카오로 했던 사례도 있다. 그리고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광탈하고 나자 왜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마카오에 베이스 캠프를 차렸는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0-
마카오는 중국어로 아오먼(澳門)이다. 아오(澳)는 깊다는 뜻도 있지만, 땅이름으로 쓰일 때는 만을 뜻한다. 아오먼은 '만(灣)의 입구'라는 뜻이다. 마카오란 말은 포르투갈식 이름이다.
16세기 초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 도착해서 이 지역의 이름을 물었다. 현지인들은 아마 사원을 묻는 줄 잘못 알고 아마 여신의 집이라는 뜻인 '마콰오미우 媽閣廟'를 알려 주었다. 마콰오미우는 아마(포르투갈식)의 중국식 발음이다. 포르투갈인은 그 발음을 '마카오'로 들었으므로, 그 후 도시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마카오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이 있다. 한편, 현지인들이 사원 주변 지역만을 한정해서 아마가오(아마만)라 부르자, 이를 잘못 알아 들어 마카오라고 부르게 되고, 이 말이 전체 지역 이름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마카오 도심 지도 (출처 : 티티어스)
마카오는 크게 마카오 반도 지역 (구 시가지가 위치) 과 타이파 지역으로 나뉜다. 필자는 베네치안 마카오 리조트를 숙소를 삼았는데 숙소 자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마카오 반도로 가기 위해서는 매번 다리를 건너서 20-30 분 정도씩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 다소 불편했다.
유명 쇼핑몰이자 호텔인 COD(City of Dream),플라자 호텔, 베네치안 마카오 리조트 등이 타이파 지역에 위치해 있고, 윈(Wynn) 호텔, 마카오 구 시가지(역사지구), 트럼프 호텔, 마카오 타워 등은 마카오 반도 쪽에 위치해 있다. 일정이 된다면 양쪽 모두를 둘러보는 것이 좋겠지만 굳이 한곳만 선택하자면 마카오 반도쪽에 더 볼거리가 많다고 말하고 싶다.
마카오에서 화폐는 파타카(Pataca, MOP) 라는 고유 화폐를 사용하지만 홍콩 달러나 중국 위안화도 통용된다. 홍콩에서 오는 관광객들은 처음부터 홍콩 달러를 가져와서 마카오에서 쓰면 된다. 환율은 홍콩 달러(HKD) = 파타카(MOP) 가 1:1 로 교환된다.
마카오 호텔은 전원 콘센트가 110V 용이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200V 용 콘센트 플러그도 비치되어 있어서 별다른 준비 없이도 한국에서 가져간 충전기 등은 그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마카오는 뭐니 뭐니해도 "카지로" 로 유명하며, 마카오의 밤문화도 대단하다. 여기에 25 개에 달하는 유네스코 문화 유산이 시내 중심에 몰려 있고 맛있는 음식들도 많아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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