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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울

2012 서울 - 고궁박물관

soyoja 2012. 1. 25. 00:13

국립 고궁박물관은 경북궁 내에 위치해 있다. 예전의 국립 중앙박물관이 바로 지금의 이 국립 고궁박물관인데. 
국립 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이곳 박물관은 국립 고궁박물관으로 고궁에 대한 유물들을 집중적으로 전시하는 국립 박물관으로 재단장 한 모양이다. 2007 년 전관을 개관한 이래 주로 왕실의 유물들과 대한제국의 황실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의 역활을 하고 있다. 
요새 들어 박물관에 대한 관심도가 무척 높아져서 이곳을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국립 중앙박물관처럼 대형 박물관이 아니라 이런 특화 박물관에서도 나름 중요하면서도 알찬 전시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어서 꽤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는 길은 경북궁 역 혹은 광화문 역에서 내려서 걸아갈 수 있으며, 특히 지하철  3호선 경북궁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고궁박물관 입구가 보이므로 교통도 상당히 편리하다. 무엇보다도 입장료가 무료 이기 때문에 광화문 일대로 나들이를 나온 김에 한번 들러볼 만 한 추천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마침 "조선 왕실 의궤와 도서 특별전" 을 하고 있었다. (2011.12.27 ~ 2012.02.05)  

이곳 고궁박물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의 규모로 국가의례, 제왕기록, 궁궐건축, 과학문화, 왕실생활, 대한제국, 왕실문예, 궁중음악, 궁중회화, 어가의장, 자격루 등의 주제별로 전시관이 구분되어 있었으며, 특별전시관에서는 위에 적었다시피 2월 초 까지 조선 왕실 의궤와 도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2층 - 지하 - 1층 순서로 둘러보았는데 ( 박물관 입구를 들어가면 바로 2층이라서 2층부터 보면서 내려가는 식으로 관람하는 것이 편리한 구조로 박물관 동선이 설계되어 있다 ) 2층은 제왕기록 - 국가의례 - 궁궐건축 - 과학문화 - 왕실생활 순으로 관람을 하도록 전시관이 구성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들어가본 제왕 기록실. 제왕기록실의 벽면에는 조선조의 역대 왕들의 계보가 도표로 설명되어 있다. 
고궁박물관의 전시품은 사실은 대부분이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의 전시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이전의 유물은 보지 못했다. 경북궁 고궁을 둘러본 이후에 이곳 고궁박물관을 들른다면 더욱 좋은 관람 효과가 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이것은 어보(御寶) 와 어책(御冊) 이다. 어보란 국가와 왕권을 상징하는 예물로 왕의 도장을 뜻하나 일반적으로는 왕비, 왕세자 등의 의례용 인장까지도 통칭한다. 왕, 왕비, 세자, 세자빈 각각의 덕을 기리는 뜻이 담긴 특별한 이름인 존호를 올리는 의식등에 사용되었으며 돌아가신 후에는 종묘에 보관한다. 어책은 책봉시 혹은 존호를 올릴 때 어보와 함께 올리는 책으로 보통 주인공의 공덕을 칭송하는 글을 새겼다. - 박물관 전시품 설명 중 발췌.

위의 어보와 어책은 태조 임금의 것으로 기억한다. 옥에 글자를 깎아 넣은 것이 상당히 정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옥새는 대대로 물려서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왕이 새로 등극할 때 마다 왕들 각각의 도장 (어보) 를 새로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세종임금의 국조보감(國朝寶鑑)이다. 국조보감이란 왕의 업적 중에서 잘한 것들만 골라서 후대의 교훈을 위해서 발간하는 책을 말한다고 한다. 
성군인 세종임금의 국조보감이라 그런지 왠지 두꺼워 보인다.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왜란 당시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선정하여 그들에게 발급한 공신 증서. 
이 증서에는 당시 재상을 지냈던 유성룡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선무 1등 공신은 이순신, 권율, 원균이며 일설에 의하면 원균은 이순신을 시기한 선조 때문에 견제 차원에서 덩달아 선무 1등 공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조신시대에 사용된 마패이다. 마패마다 말의 갯수가 다르며 이 마패를 통해 관원이 지방에 출장을 갈 경우 역마소에서 말을 빌릴 수 있었다고 한다. 드라마 사극을 통해서 마패는 암행어사의 징표처럼 알려져 있기는 한데 이는 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역대 왕과 왕비의 제삿날을 적은 판이다. 
태조 부터 익종(翼宗) 까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익종의 다음대인 헌종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궁궐건축관 안에 있던 부적이다. 디자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워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확대해서 보면 왕을 상징하며, 비를 부르는 전설적인 동물인 용(龍)의 글자를 모아서 물 수(水) 를 만들었다. 
화재를 막기 위한 부적이라고 한다. 위의 용그림 부적과 함께 2001년도에 경북궁 근정정 중수 공사를 할 때 1867년에 봉안한 근정정 상량문이 발견되면서 함께 발견된 부적이라고 한다. 


경북궁 근정전의 사진. 


이것은 "동궐도" 의 사진이다. 동궐도는 국보 249호이며 이 사진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촬영한 것이라 한다. 
경북궁의 동쪽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한 그림으로 궁궐 연구에 중요한 사료라고. 


과학기술관에서 찍은 "간평해시계와 혼계해시계" 가 새겨진 돌이다. 보물 841호. 
북극을 중심으로 둥글게 선을 새긴 해시계와 남극을 중심으로 둥글게 새겨 날금(경선) 과 씨금(위선)을 나타낸 해시계.
서울의 표준위도가 37도 39분 17초 임을 정확하게 적어놓았다. 


팜플렛에 의하면 이곳 고궁박물관에는 국보 1 점과 보물 8 점이 전시되어 있다. 유일하게 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인 별자리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을 공교롭게도 사진을 찍지 못하여 팜플렛에 수록 된 사진으로 대체한다. 이 지도는 조선 건국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흑요암에 정교하게 우리 별자리를 새겨 넣은 것이다. 특히 조선 왕조 초기인지라 권위의 상징인 천문도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을 것이다. 태조에게 누군가가 귀한 고구려 시대의 천문도를 바쳤기에, 이를 토대로 천문, 기상을 관장하던 서운관에서 지금의 별자리와의 오차를 수정하여 만든 것이라 한다. 
사실 마모가 심한 상태라서 육안으로 보기에 별자리를 자세히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냥 평범한 오래된 비석처럼 보였을 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워낙 마모가 심한 상태라 전문가들도 육안으로는 석각의 글자 대부분이 판독이 어려운데, 다행히 이 석각으로 찍어낸 복각본이 남아 있어 내용의 복원이 가능했다고 한다.

다른 블로그와 고궁박물관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이곳 고궁박물관에는 이것 외에도 국보가 몇점 더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박물관으로 모두 이관된 모양인지 현재 공식적 팜플렛 상에는 이 지도가 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일한 국보로 되어 있다. 이 석각은 고구려 이래의 한국의 우주관을 도식적으로 잘 보여주는 점, 중국 남송(南宋)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돌에 새긴 천문도인 점, 제작연대가 분명하고 그것도 조선시대 국초에 해당되는 점 등에서 더없이 중요한 천문과학문화재로 평가된다. 


이것은 오목해시계이다. 보물 845호. 
청동으로 만든 반구형의 해시계로 "솥 모양의 해시계"라는 뜻으로 양부일구라고 불렸다.
청동으로 만든 반구 안에 은선을 박아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 절기를 13개의 계절선으로 나타낸 것이다. 
세종때에 처음 만들어져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서울 혜정교와 종묘 남쪽거리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 오목해시계의 내부가 잘 보이지 않기 떄문에 전시관에서는 해시계 바로 위에 거울을 배치하여 관람객이 해시계의 내부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흑... 이 유품의 이름을 잘 모르겠다. 지구본과 같은 것인데, 꽤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흥미로워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저울과 저울추 그리고 자. 조선시대에도 상당히 표준적인 도량형이 쓰였음을 알려주는 유물들이다. 

동의보감이다. 아마 영인본이나 필사본인것 같다. 
너무나 유명한, 허준이 내의원 의원들과 함께 조선시대의 한의학을 집대성한 책. 보물 1085호 인데 이 책에는 보물 표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영인본인 것으로 강하게 추측된다. 


삼인검(三寅劍) 과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劒)
호신용 및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용도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양날 금속검. 
사인참사검은 길이 134.5cm, 삼인검은 길이 130cm 로 한손으로 휘두르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Two handed Sword 정도 되려나... 

개인적으로 무기류를 좋아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것은 패월도(佩月刀) 라고 하는 칼이다. 
무기로 쓰이는 칼이 아니라 의식용 칼의 일종으로 칼집과 병부는 물고기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전체 길이는 약 105cm

은입사 도깨비문양 쇠몽둥이(銀入絲鬼面文鐵鎚). 보물 1444호 
은으로 정교하게 장식이 된 쇠 몽둥이로 궁궐 내에서 근위대 등이 의장용으로 사용했던 병장기라고 한다.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이것 2점 뿐이라고 하니 상당히 귀한 보물이라고 생각된다. 은으로 만들어졌기에 지금까지 전래되는 갯수가 적지 않았을까 싶다. 


이곳은 궁궐건축 전시관이다. 
경북궁 근정문 위에는 서유기의 인물들을 지붕 위에 장식해 두었는데. 이것이 그 장식들을 나타낸다. 
왼쪽부터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천산갑, 이구룡, 마화상, 저팔계 라고 한다. 천산갑, 이구룡, 마화상은 누군지 모르겠다. 서유기를 제대로 읽어본지 하도 오래된지라... 

이것은 경북궁 근정전 어좌(임금이 앉는 자리) 바로 위의 천장을 장식한 천장 장식이라고 한다.  
고궁박물관의 전시품들은 대부분 서책들이 많아서 좀 지루할 수 있었는데, 모처럼 화려한 전시품을 보게 되어 눈이 매우 즐거웠다.


이제 지하로 내려가서 왕실 음악, 왕실 회화 및 자격루를 구경해 보자. 


이것은 종묘제례악에서 사용되는 편경(編磬)이라는 타악기이다.
저 돌이 옥돌이고, 책에서 읽었던 기억으로는 고려때부터 중국에서 들여와서 사용하다가 세종때 우리나라에서 옥돌이 발견되어 박연이 처음으로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왕실 음악에 쓰이던 악기들. 
우리나라 고유의 재래 악기들은 주로 타악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금장도와 은장도. 
나무로 만들어진 칼로 금색과 은색으로 칠하고 화려하게 각종 길상문을 그린 의장용 장식 칼이다. 손잡이에 구름문양을 새기고 유소를 달아 장식하였다.


이것은 세종때 장영실이 만들었다는 물시계인 자격루를 복원한 것이다.
자격루는 워낙 그 부피가 커서 별도의 "자격루 관" 이라는 곳에 홀로 덩그러이 전시되어 있었다. 넓은 전시관에 자격루만 있으니 좀 썰렁한 느낌도 들기는 한다. 
이 자격루는 세종 16년 (1434년) 에 만들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세종실록의 보루각기라는 책에 설명되어 있는 자격루의 원리와 구조를 토대로 복원한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느정도나 그 당시 자격루를 그대로 재현했는지는 솔직히 좀 의문이기는 하다. 현대적인 기술이 전혀 사용되지 않고 당시 자격루를 만들던 기술 그대로 사용된 것이 맞는지...? 큐레이터 도우미 아줌마가 있길래 몇가지 물어 보았는데 별로 전문성은 없어 보여서 자세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실제 자격루처럼 이 자격루도 시간 마다 인형이 징을 치면서 시간을 알려준다. 마침 운 좋게도 징을 치는 시간에 이곳에 오게 되어서 징을 치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0-; 

자격루에 대해서 좀더 적어보자면, 자격루는 물을 이용한 동아시아 전통의 물시계와 구슬을 이용한 아라비아식 자격장치가 조합된 "스스로 울리는 물시계" 이다. 자격루의 구조는 동력을 전달하는 물항아리와 구슬, 구리고 자동으로 시각을 알려주는 자격장치로 구분되며 시간을 알리는 장치는 하루에 2시간마다 종을 치고 밤시각 동안 시각을 알리는 북과 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3개의 물 항아리(파수호) 에서 흘려 보낸 물이 기둥 항아리(수수호)로 들어가면 이 항아리 안의 부자에 꽂힌 잣대가 나무기둥(방목)으로 올라간다. 나무기둥에는 시를 알리는 구리 구슬 12 개와 경, 점을 알리는 구리구슬 25개가 들어있다. 방목 안으로 올라가는 잣대는 구슬들을 떨어뜨려 자격장치로 굴러가게 한다. 자격장치 안에는 시를 알리기 위한 큰 쇠구슬 12개와 경, 점을 알리는 큰 쇠구슬 25개가 들어있다. 방목 안으로 올라가는 잣대는 구슬들을 떨어뜨려 자격장치로 굴러가게 한다. 자격장치 안에는 시를 알리기 위한 큰 쇠구슬12개와 경, 점을 알리는 큰 쇠구슬 25개가 구리구슬을 기다린다. 자격장치로 들어간 작은 구리구슬들은 큰 쇠구슬을 움직이게 된다. 12개의 시를 알리는 쇠구슬들은 인형을 움직여 종을 치는 동시에, 수레바퀴 모양의 회전판을 돌려 역시 시를 알리는 12개의 12지신 인형을 차례로 올려준다. 종은 한번만 치지만 12개의 인형이 매 시마다 바뀌어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  - 설명서 팜플렛 내용 중 발췌. 

다시 읽어보지만 솔직히 명확하게 이해는 안간다. 자격루의 각 구슬과 인형들이 움직이는 장치 도면등의 설명을 설계도면 등과 함께 좀 알기 쉽게 해 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자격루는 특히 관심이 많던 유물 중 하나인데... 

이렇게 지하의 관람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1층으로 가 보았다. 1층에는 대한제국 전시관을 비롯하여 비교적 근대의 전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차는 순종황제가 탔던 어차로 미국의 GM 사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1918년식에 배기량 5153 CC. 
차의 상태가 너무나 깨끗한 것으로 보아 아마 당시의 황제가 탔던 것과 같은 기종의 차를 구해다가 전시해 놓은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단 20 대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박물관 측에서 이 차를 구하는데 돈을 상당히 썼을 것 같다. 


이곳 전시관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고종의 일곱번째 아들인 영친왕과 그의 왕세자 비인 이방자(나시모토 마사코) 가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들, 그리고 그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미 일제시대에 태어났던 왕손으로 제대로 왕의 지위도 누리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일본인 왕세자비와 결혼하여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일본 보병 연대장과 오사카 유수의 사단장 직 등을 역임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왕족의 지위가 박탈되고 평민으로 강등되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모두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무국적 생활을 하며 해외를 떠돌며 생활고를 겪다가 1963 년에 박정희의 주선으로 국내로 귀국하여 국내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일제에 의해 그 수명을 마감한 비운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자손.... 때를 잘못 만난 비운의 황태자와 황태자비. 사실 어느 역사를 보든지 간에 멸망한 왕조의 마지막 왕손들은 대개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것으로 기억되어 진다. 그들이 왕손이라는 혈통의 운명때문에 다른 평범한 사람이 추구할 수 있는 행복도 추구하지 못하고. 만인이 부러워 할만한 로열 패밀리라는 운명이 때를 잘못 만나서 그들에게 굴레가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
전시 유품들을 보는 내내 왠지 씁쓸하고 안타까운 아련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대한제국 전시실 옆에는 왕실문예와 탄생교육 이라는 주제로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대한제국 전시관 관람을 마친 후 이곳으로 이동했다. 


이것은 조선 13대 명종대왕의 태실 모형이다. 
예전에는 태반도 귀하게 여겨 왕이 태어나면 그 태반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이렇게 무덤을 만들어서 묻었다고 하는데 이를 태실이라고 불렀단다. 


이 항아리가 태반을 보관하는 항아리 들이다. 일명 "태항아리" 라고 불렀다고 한다. 


국립 고궁박물관은 약 3 시간 정도면 모든 전시품들을 여유있게 볼 수 있는 구성이다. 고궁에 특화된 전시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이쪽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경북궁 고궁 관람과 함께 보면 매우 좋을 것 같다. 병장기와 고종이 타던 자동차 등과 같이 아이들도 흥미를 가질만한 다양한 전시품들이 많아서 가족 단위로 오기에도 좋을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교통이 편리하고, 관람료가 무료라는 것이다. 

참고로, 고궁 박물관은 2012년도 2월 6일 부터 7월 31일 까지 임시 휴관이라고 하니 방문할 사람은 그 전에 미리 미리 방문해 보는 것이 좋겠다. 아마 박물관의 전시품 구성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리모델링도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