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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문화전 2부 보화각 - 동대문 DDP 디자인 박물관 본문
간송미술관은 늘 한번 가보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성북동이라는 외진 위치에, 1년에 두번씩 밖에 하지 않는 전시 일정으로 일반인이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개관에 맞추어 이곳에서 간송 미술관의 국보급 문화재들을 전시하는 특별전이 열렸다길래 편안하게 간송미술관의 국보급 미술품을 관람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의 연간 운영비용은 300 억에 달한다 한다. 이 비용을 자체 조달하기 위해서 서울 디자인 재단측은 다양한 기획 전시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간송재단과의 협력이다. 향후 3년간 DDP 에 간송미술관의 소장품 전시를 하기로 협약을 맺었다는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간송미술관의 작품들을 이곳 동대문 DDP 에서 볼 기회가 많을 것 같다.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니 지나치게 많은 전시 운영요원들의 통제로 전시에 대한 불편함, 그리고 조명, 전시 위치 등에 대한 불만 글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큰 무리 없이 즐겁게 관람을 했다.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니 조명이 조금 어둡고, 전시품들의 위치가 눈높이보다 너무 낮아서 허리를 숙이고 작품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일부의 불만이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굳이 아쉬운 점이라면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보이는 것, 그리고 만만치 않은 입장료(성인 8,000원)에 비해서 전시된 작품의 수가 너무 적다는 점 등이다. 차분하게 관람을 해도 2시간이면 전체 작품을 모두 볼 수가 있을 정도이다.
책에서나 보던 귀중한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는 좋은 기회이기에 강추하고 싶은 전시회이다. 몇가지 기억나는 작품들을 꼽아보면...
이번 전시회의 대표 작품중 하나인 신윤복의 "미인도" 이다. 조선시대 미인의 모습을 잘 살려냈는데, 아마 작품속 주인공은 기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인의 얼굴과 옷의 묘사는 조선시대의 미인의 모습을 눈 앞에서 다시 보는 듯 했다. 다만 직접 보니 작품의 상태는 색이 많이 바래있고 군데 군데 표면이 낡아서 부스러지려는 모습이 보이는 등 비슷한 시기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볼때 이 작품의 보존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박물관 측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인도 소개 - 간송미술관 홈페이지)
이 전시회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구경한 작품들은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국보 135호) 이었다. 풍속화가이던 그는 30 점의 풍속화를 시리즈로 그렸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이 "단오풍정" 이다. 아마 이 작품을 안본 사람은 없을듯... 아쉽게도 혜원전신첩의 30작품은 보존상의 문제로 10 작품씩 순회하면서 전시된다고 한다. 이 날 갔을때는 가장 유명한 "단오풍정" 은 없었기에 따로 올려본다. 이번에 이 작푸을 찬찬히 살펴보니 상당히 에로틱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보통 관람객들은 우상단의 그네타는 여인에게만 시선이 가 있지만, 사실 좌하단의 네명의 여자와 우하단의 여자는 모두 가슴을 드러내고 몸을 씻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좌상단에는 두명의 동자승이 이를 음흉스럽게 훔쳐보는 모습이 상당히 리얼하다. 어떤 평론가는 이를 조선시대 당시 땅에 떨어진 불교와 스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본성상 여인의 노출된 육체를 훔쳐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유명한 고려청자 "청자상감운학문매병 (靑磁象嵌雲鶴紋梅甁, 국보 68호)". 간송이 당시 돈 2만원(현재 시가 약 60억) 으로 경매에서 구입한 것이라 한다. 이름이 길기는 한데 잘 들여다보면 그 이름속에 이 도자기의 특징이 설명되어 있다. 상감 기법으로 ""구름과 학"(운학) 을 새겨 넣은 꽃병(문매병) 이란 뜻이다. 워낙 유명한 고려청자라서 고려청자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이 작품이 간송미술관에 있었구나... 직접 살펴보면 하단부 일부는 상감이 벗겨지고 훼손이 된 흔적이 보여서 조금 안타까웟다. 1,000 년이 넘는 세월의 무게라고 생각해야 할듯...
이 그림은 조선 수묵화의 대가인 이정(李霆) 이 그린 "풍죽(風竹)" 이란 작품이다. 이 그림은 5만원권 지폐의 후면에도 그려져 있다. 그는 임진왜란때 왜적에서 칼을 맞아 오른팔이 잘려나갈뻔 한 시련을 겪었던 인물로 풍죽에서 흐르는 고고함과 강인함은 단지 붓끝의 기교로 얻을 수 있는 경지가 이님을 알 수 있다.
김홍도가 그린 "황묘농접" 이란 작품이다. 노랑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한다, 는 뜻으로 고양이와 나비간의 긴장감있는 관계를 잘 묘사한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옛부터 고양이는 70 노인을 상징하고나비는 80노인을 상징하며, 화면 중앙의 패랭이꽃의 꽃말은 "청춘" 이라는데. 이 작품은 단원이 누군가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는 설이 있다.
훈민정음 혜례본, 국보 70호. 경매에 1,000 원에 나온 물건을 간송이 11,000 원을 주고 바로 구입해 오라고 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말과 글이 말살되던 시기였기에 훈민정음을 구했다는 것은 간송에서 너무나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간송이 자신의 많은 소장품들 중에서도 가장 아꼈으며 6.25 때는 피난을 가는 와중에서도 품에 지니고 다니고 밤에는 배게 밑에 넣고 다녔을 정도로 소중하게 간직했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배게 밑에 배고 자면 책이 훼손되지는 않으려나??)
이번 전시회를 통해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일생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그는 800 만석 지기의 아들로 태어나 자그만치 현 시가로 6천억원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이 막대한 재산을 그는 일제가 수탈해가는 문화재를 사들이는데 썼고, 그가 문화재를 경매해서 모으던 일화는 책으로 출간될만큼 드라마틱했다. 이런 이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일본을 비롯한 해외를 떠돌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부자로서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실천한 그의 담대한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딴 문화 재단과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 을 설립하면서 그는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예술에 투자하고 그것을 물려줌으로서 이름을 남기고 가는 것도 부자로서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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