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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문화전 5부 - 화훼영모화 본문
동대문 DDP 가 개관하면서 이 전시공간을 어떤 전시관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DDP 의 하나의 해법은 전시공간 부족으로 다수의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일반인에게 소장품 공개는 제한적이었던 "간송미술관" 과의 3년간의 협약이었다. 이후 DDP 개관 후 간송미술관의 귀한 소장품이 순차적으로 전시되고 있는데,
1부 간송 전형필('14.3~'14.6), 2부 보화각('14.7~'14.9), 3부 진경산수화('14.12 ~ '15.5), 4부 매난국죽('15.6 ~ '15.8) 에 이어 5부 화훼영묘화('15.10 ~ '16.3) 에 이르렀다. 나름 3부 빼고는 모두 다 관람하기는 했는데, 매번 안복(眼福) 을 잘 누리고 온다는 표현이 걸맞게 일류급의 소장품들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블로그에도 제대로 다 정리했으면 하는데 게으름 때문에 5부에 와서야 처음 글을 남긴다.
이번 전시회 오디오 가이드 목소리는 배우 김규리가 녹음했다고 한다.
조금 뜬금 없다는 느낌. 성우나 아나운서처럼 나래이션을 맛깔나게 한 것도 아니고.
느낌상 중요한 국보급 문화재는 먼저 전시하고, 상대적으로 무게가 떨어지는 산수화, 영묘화 등을 나중에 전시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만... 전시 자체는 상당히 수준높고 볼만한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크게 배운 것 하나는, 선조들이 화훼영묘화를 그리면서 그림에 상징을 많이 넣었다는 것.
예를 들면 잉어는 "등용문" 의 고사를 상징하여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렸고, 십장생 중 하나인 사슴은 장수를 기원하며 선물용 그림으로 많이 그렸고, 부부간의 금슬을 기원하며 원앙새와 함께 연꽃을 그린 것은 연꽃이 연이어 생긴다(蓮生) 는 의미에서 다산을 기원한다고 한다. 고슴도치가 오이를 지고 있는 그림도 있는데 고슴도치는 다산의 상징(가시가 많아서) 이고, 넝쿨식물인 오이 역시 자손이 끊이지 않고 면면이 이어진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도슨트와 도록의 해설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니 아는만큼 보인다고, 그림에 숨겨진 이면의 의미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더욱 흥미로웠다.
유흥준 교수는 이런 전시회를 즐기는 방법으로, 가서 가장 마음에 들고 기억에 남는 작품 세개 혹은 다섯개만 골라서 머리속에 담아두고, 뒤새기면 된다는 말을 했었다. 그래서 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몇개 골라서 적어 본다.
이양도(二洋圖), 공민왕(1330 ~ 1374)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고, 유일한 고려시대의 그림이다. 고려시대의 그림 치고는 너무 보존상태가 좋아서 조금 놀라울 정도였는데, 알고보니 전시를 위해 그림 일부가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 원본은 위의 인터넷에서 찾은 상태였고, 전시되고 있는 그림은 위에서 빵꾸가 난 부분들이 제대로 메꿔지고 복원된 상태였다. 고려시대의 불화들을 보면 오랜 세월의 흐름 때문에 변색이 심하고 보존상태도 나쁜 경우가 많았는데. 이 그림은 복원 때문인지, 원래 보존을 잘 한건지 상당히 상태가 좋았다. 그림은 매우 작은데 (15.7 x 22cm) 아마 전체 그림의 일부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양 두마리가 아니고 양이 세마리 처럼 보이는데, 어떤 근거로 이양도라고 단정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도슨트가 설명해 줄때 물어볼 걸... 제목이 "이양도" 라서 나도 모르게 양이 두마리가 맞겠거니 했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도 든다.
공민왕은 잘 알려진 왕이지만 생각외로 그림도 잘 그리고 잡기에 능한 왕이었다 한다. 영화 "쌍화점" 에서 풍류를 즐기고 그림을 그리던 공민왕의 이미지는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면 양의 터럭 한올 한올에 대한 세밀한 묘사부터 상당한 솜씨를 보여준다.
자웅장추(雌雄將雛) 암 수탉이 병아리를 거느린다, 변상벽(1730 ~ 1775)
닭의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 여기에 등장하는 닭은 조선의 고유종인데 그걸 알수 있는 것은 귀 옆에 벼슬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요새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조선 토종닭들은 저렇게 귀 옆에 벼슬이 있었다 한다.
첫 느낌은 웅장한 검은 수탉의 위용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병아리들이 전부 암탉에게 모이고 있어서 이 집안의 실세는 암탉이란 것을 알수 있다. 수탉이 몸을 부풀리고 위세를 과시하려 해서 여기에 속아 병아리 한마리만 수탉을 멀뚱멀뚱 바라본다. 여기에 여자 도슨트의 설명은, 숫탉 뒤에 또 다른 하얀 암탉 한마리가 있는데, 이는 이 닭 부부와 젊은 암탉 간의 다가올 분란이 예상된다는 해석도 내 놓았다. ㅋ
여기에 그림 위에 써 있는 제사는 후배화가 마군후가 썼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흰털 검은 뺘로 홀로 무리 중에 우뚝하니, 기질은 비록 다르다 하나 5덕이 남아있다. 의가에서 방법을 듣고 신묘한 약을 다려야겠는데, 아마 인삼과 백출과 함께 해야 기이한 공훈을 세우겠지" 즉, 닭 그림을 보면서 삼계탕을 연상한 것이다. 좋은 그림 위에 크게 저런 시를 적었으니 상당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고, 건방진 후배란 생각도 든다. 시를 보면 알겠지만 거의 그림의 좌상단을 뒤덮고 있어서 눈에 거슬린다.
해탐노화(蟹貪蘆花) : 게가 갈대꽃을 탐하다, 김홍도(1745~1806)
옛부터게 두마리가 갈대꽃을 잡고 있는 그림은 과거급제를 기원하는 그림으로 많이 그렸다고 한다. 이는 두마리 게가 이갑(二甲), 즉 과거에 두번 급제한다는 의미가 있고, 갈대를 받는다는 "전로(傳蘆)" 와 과거 급제 후 임금이 내리는 음식을 받는다는 전려(傳臚) 가 중국어 발음이 같기 때문에 만들어진 상징화라는 의미라 한다. 예전에는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이 가슴에 품고 다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니... 예나 지금이나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며 부적이나 상징을 몸에 지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길상화(吉祥畵) 를 몸에 지니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옛 선조나 현대인이나 생각하는 것은 다 비슷하지 않나 싶다.
황묘농접(黃猫弄蝶) 노랑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 김홍도(1745~1806)
조선시대의 대표 화가인 단원 김홍도는 인물, 산수, 화훼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났다고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김홍도의 동식물 그림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이 "황묘농접" 은 이번 전시회의 대표 그림으로 웹 사이트에도 메인으로 등장한다. 나비를 바라보는 고양이 표정이 재미지다.
도슨트의 설명으로 한가지 몰랐던 사실을 알았는데 (이 내용은 도록에도 안나와 있다), 그림 중앙의 패랭이꽃은 여름에만 피는데 그림 아래의 제비꽃은 봄에 피고 여름에는 꽃이 지기때문에 이 그림은 1년에 걸쳐 그렸거나 혹은 적어도 단원이 직접 꽃들을 보고 그린 그림은 아닐 것이란 설명이다. 그림 하나도 이렇게 세세하게 보면 여러가지를 알수 있구나...
어약영일(魚躍迎日) : 물고기가 뛰어 해를 맞이하다, 심사정(1707~1769)
잉어가 황하의 지류 중 3단 폭포가 되어 있는 용문(龍門) 이란 곳을 뛰어 오르면 용이 된다는 "등용문(登龍門)" 의 고사에서 비롯되어, 잉어는 전통적으로 과거 급제의 상징이었다. 이 그림은 바다를 뛰어 오르는 잉어로 과거 급제를 묘사했는데, 여기에 하늘에 떠있는 태양은 임금을 상징하나 그야말로 과거 급제를 바라는 축원이 담긴 상징의 절정이다. 심사정은 이 그림을 그리면서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화보를 보고 그린 것이라 한다. 잉어는 민물고기인데 그림속의 잉어는 파도가 치는 바다에 있다. 심사정이 후배의 과거 급제를 기원하면서 그린 그림으로 추정된다.
전시관 내부에서 상영중인 짧막한 다큐멘터리도 전시품과 연관되어 이해를 돕는데 유용했다.
화훼영묘화 전을 보면서 그림속의 자연에 옛 사람들이 생각한 상징성을 읽어가면서 보니 더욱 흥미롭다. 장수, 과거 급제, 부부간의 우애, 자손 번창 등을 기원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다만 요새 같으면 돈을 바라고 부자되기를 바라는 그림이 더 유행하지 않을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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