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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공연

뮤지컬 엘리자벳 - 취향을 타는 유럽식 뮤지컬

soyoja 2015. 8. 22. 01:55

 

인터파크에서 현재 예매 1위를 달리고 있는 뮤지컬이라길래 좀 기대를 하고 봤다. 뮤지컬계에서 한손에 꼽힐만한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옥주현이 등장한다는 점도 기대를 많이 부풀게 했다. 2012년 한국 초연 당시에는 예매박스 10주 연속 1위, 15만 관객을 동원하고 제 6회 더뮤지컬어워드에서 12개 부문에 후보작으로 이름을 올려 8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한국에서 대단히 성공한 뮤지컬로 이름을 떨쳤다. 그런데...

8월 20일 공연.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신상록, 루케니 - 이지훈

막상 보니... 영 기대만 못하다. 평작정도 된다는 느낌인데 비싼 티켓가격(VIP 14만원, R석 11만원)을 생각하면 본전생각이 많이 났다.

유럽 뮤지컬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 작품 내용이 정서적으로 우리와 다르고, 음악도 귀에 친숙한 팝 계열이 아닌 오페라나 클래식 음악 느낌이 나기에 취향을 많이 탄다. 여기에 스토리도 미국식 뮤지컬처럼 직선적이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구성에 실존인물과 상상의 인물(죽음) 이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은유가 많이 등장하여 단순한 스토리 텔링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면 넘어갈때 마다 등장하는 해설역인 루이지 루케니가 등장하는 것도 산만하다는 느낌이라 극의 몰입에 방해가 됐다. 반면에 다른 후기들을 보니 감동적이었다. 끝나고 울면서 나왔다는 평도 많던데. 엘리자벳의 화려한 신데렐라적인 스토리가 여성 관객들에게는 많이 어필하는 듯 하다.

뮤지컬 "에비타" 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 권력의 핵심에 있었고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하여 자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여주인공을 소재로 했다는 점. 싱 스루(sing thru) 뮤지컬로 대부분의 대사가 노래로 연결되는 형식이란 점, 해설자 역활을 하는 배우가 등장하여 스토리 전개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 등등. 에비타는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인기를 누린 것에 비해 엘리자벳은 옥주현 의 높은 인기와 뛰어난 가창력이 지루할 수 있는 극을 하드캐리하며 상대적으로 더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느낌이다.  

무대의상이나 무대장치는 상당히 화려해서 볼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뮤지컬이 영화와 다르게 미술장치가 주는 시각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는 꽤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 든다. 그리고 뮤지컬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 넘버를 보면.. 사실 기억에 남는 넘버는 딱 하나. 1막 마지막에 엘리자벳이 부르는 "나는 나만의 것" 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김소현이 부른 것과 비교해 봐도 옥주현의 성량이 참 잘 어울린다.

그래서 내용은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1막을 보고나서 2막에서도 옥주현의 넘버들을 들을 것을 기대했지만...  저 넘버를 능가하는 넘버는 더이상 없더군.

옥주현의 열연은 상당히 돋보였는데, 극 초반의 아역일 때와 노년일때 부르는 넘버의 목소리와 창법이 확연히 달라서 나이가 먹어가는 시간의 흐름을 목소리만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참으로 대단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걸그룹 출신임에도 춤은 너무 못춰서 극중 춤추는 씬이 많이 나오는데도 화려한 맛은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뮤지컬의 스토리는 극적인 요소도 없고 식상해서 많이 아쉬웠다. 엘리자벳의 현실이 감정이입이 잘 되는 여성 관객들은 호평이 많은 것 같은데 남자 입장에서 보면 막장드라마의 한장면을 보는 것 같다 .우연히 황제의 눈에들어 결혼하는 신데렐라 스토리, 여기에 고부간의 갈등, 남편간의 갈등 등등... 유명세에 비해 딱히 이룬 업적이 없는 엘리자벳의 삶을 드라마 화 하다 보니 아무래도 무리수가 된듯.  공연 기획사인 EMK 에서 최근에 유럽 뮤지컬들을 계속 라이센스해서 들여오고 있는데 미국식 극 전개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많이 낯설다. 여기에 티켓가격조차 VIP 가 14만원 (그런데 블루스퀘어 1층 전체가 VIP 석이다. VIP 석이 전체 좌석의 절반 가까이 된다). 뮤지컬은 돈이 많이 드는 문화활동이라 한편 한편 보는데도 작품선정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데, 당분간은 유럽 뮤지컬은 꺼려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