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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국립 박물관 2편 본문

국내/경상도

경주 국립 박물관 2편

soyoja 2014. 5. 5. 09:02

1편에서 이어집니다...

 

 

4개 관으로 나뉘어 있는 경주 박물관의 제 3관의 주제는 "강력한 중앙집권 왕국" 신라 였다.

지증왕(재위 500 ~ 514) 은 군사 요충지를 중심으로 행정 구역을 정비하고, 군주를 파견하여 본격적으로 지방통치를 시작했다. 실직국(삼척)에 이사부를 파견하여 고구려의 침략에 맞서 동해안을 방비케 하며 이 지역이 신라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사부는 512년에는 동해의 우산국(울릉도) 를 복속시켰다.

 

이차돈 순교비. 경주 소금강산 백률사에서 출토된 것으로 통일신라 817년에 건립되었다. 

이차돈은 신라에 불교를 퍼뜨리는데 중요한 역활을 한 인물이다.

 

이 돌들은 바둑돌로 추정된다. 용강동 6호 석실에서는 이 바둑돌로 추정되는 자갈돌들이 나왔는데,

이것이 정말 바둑돌이라면 신라에서는 6세기 이전부터 바둑이 도입되어 사람들이 즐겼다는 이야기가 된다.

고대 국가로 성정한 신라는 편입된 사라들을 지방으로 삼고, 각 나라의 수장은 세력에 따라 신분을 부여하였다. 왕과 왕족은 골(骨) 의 신분이 되고 지방에서 올라온 수장은 두(頭)의 신분이 되어 이 골품제는 법흥왕(514 ~ 540) 대에 이르러 17 관등제로 완성되었다.

신라의 골품제도는 부모로 부터 물려받는 것으로 바꿀 수 없었으며 혼인도 같은 신분끼리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신분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관직의 등급이 제한되었으며 옷의 색깔이나 집의 크기도 달랐다.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큰 공을 세워도 정해진 품계 이상으로는 출세가 불가능한 상황이라서 신라의 많은 인재들이 좌절했다. 더구나 백제, 고구려 및 지방 호족들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해서 두(頭) 신분이던 이들 호족들은 후에 신라의 쇠퇴기에 신라 멸망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한다. 결국 골품제라는 극심한 신분차별이 신라가 멸망하는 주된 원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진흥왕 순수비 탁본

진흥왕(재위 540 ~ 576)은 불교 경전에 있는 전륜성왕(轉輪聖王) 이 되기를 원했다. 진흥왕은 불과 수 년 만에 한반도 중부 지역까지 영토를 넓혀 위업을 이루었다. 여기에는 스스로 미륵의 화신이 되고자 한 젊은 화랑들의 헌신적인 희생도 한몫하였다.

568년 진흥왕은 태왕임을 자부하며 변경까지 수레를 몰아서 나라 안을 살피는 순수의 길에 올랐다. 북한산을 거쳐 8월에는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황초령에 이르렀고, 10월에는 가장 북쪽에 있는 국경 지대인 이원군의 마운령에 닿았다. 이 때 진흥왕은 비문을 남겨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진흥왕 대의 신라 시대 최 전성기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도

대대로,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국가가 삼국지대의 패권을 장악해 왔다.

서라벌(경주) 의 당시 모습. 20 만호가 살던 엄청난 대규모의 도시였다고 한다.

신라역사관 관람을 마치고 바깥에 나와서 특별전시관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의 특별 전시전도 열리고 있었다.

국보로 지정된 금제 관모(金製 冠帽) 이다. 금관과 함께 지배자를 상징하는 위세품 중 하나. 고깔모자와 비슷하지만 머리에 직접 착용하기에는 크기가 작다. 아랫부분에 구멍이 있는 점으로 볼 때, 가죽 혹은 자작나무 꺼질로 만든 모자의 겉을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금제 관모 꾸미개" 이다.

관모의 앞부분에 끼워 사용하는 장식으로 총 3매의 금판을 사용하였다. 중간부분은 중앙에 세로 선을 잡아 약간 접힌 상태이다. 새날개모양관장식은 신라의 지배자를 상징하는 위세품이며, 신라의 중앙 뿐만 아니라 지방의 수장묘에서도 출토된다.

 

천마총 내에서 발굴된 부장품들.

화려한 금장식으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 묻힌 사람의 높은 신분을 짐작케 한다.

 

1973년, 천마총을 발굴 당시에 "말다래" 가 발굴되었다. 이 말다래(말 안장)는 특별전을 위해 복원이 된 것이다.

 

박물관 외부에는 석가탑, 다보탑의 모형도 서 있었다.

 

다보탑 모형.

경주 국립박물관 구경을 마친다. 여유있게 모든 전시품을 천천히 둘러보려면 대략 5-6 시간 정도는 필요할 듯 싶다.

이곳에는 우리에게 친근한 유명한 유물들이 많아서 관람하는 재미가 있고, 화려한 황금으로 된 전시품이 많아서 눈이 상당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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