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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파나마

파나마의 상징, 파나마 운하 구경하기

soyoja 2014. 10. 13. 22:26

파나마는 정말 작은 나라이다. 굳이 이곳을 순수하게 여행 목적으로 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대신에 파나마는 그 지리적 중요성과 파나마 운하 존재로 인해 중미의 허브 국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에, 중미에 진출하고자 하는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이곳에 지사나 법인을 설립했다. 그래서 이곳에는 출장이나 비지니스 목적으로 왔다가 잠시 짬을 내서 여행을 하고자 하는 관광 수요가 꽤 많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공항에서는 트랜짓 시간을 활용해서 파나마 운하를 둘러보는 짧은 일정의 여행 상품이 팔리고 있었다. 오전 일찍 출발해서 2시간 정도 운하를 둘러보고 점심 전에 돌아오거나, 점심후 출발해서 저녁이 되기 전에 다시 공항으로 돌아오는 그런 일정이다. 

나는 아예 여행 목적으로 파나마에 왔기에,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파나마 운하부터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공항에서 서성이던 택시 기사와 흥정을 해서 파나마 운하에 들러서 운하 구경을 하고, 시내로 들어가는 일정을 고정 가격으로 협상했다. 총 70 불에 네고를 했는데 사실 이 가격은 매우 비싼 가격이다. 공항에서 파나마 시내에 들어가는데 보통 25 불 정도면 되고 여행 패키지를 이용해서 한나절동안 파나마 운하에 둘러보는 일정으로 가더라도 30 ~ 40불 정도면 된다. 가격을 잘 모르고 바가지를 쓴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파나마 운하와 박물관을 꽤 오랜 시간동안 꼼꼼하게 둘러보느라 바깥에서 택시 기사는 나를 하염없이 3시간 정도 기다렸다. 이 택시기사가 밖에서 기다려 준 수고를 생각해보면 조금 비싸게 준 돈은 팁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 싶다. 아무튼 다음에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참고로 택시기사는 바깥에서 나를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내가 그냥 다른 곳으로 가버린 줄 알았다며 투덜투덜 댔다. 그래서 처음에 협상한 가격보다 10 불 더 주기로 하고 이 친구의 불만을 잠재웠다.


공항에서 파나마 운하까지는 한시간 정도 걸린다.

이곳이 바로 파나마 운하 전망대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인부들의 모습이 스캐치 되어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운하 박물관과 카페테리아, 전망대가 함께 들어선 복합 문화 공간이자 관광 명소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심지어는 결혼식이나 파티를 할 수 있는 대형 회의실과 볼룸도 있었다.

파나마 운하 박물관은 총 4개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파나 운하의 배경과 역사에 대해 매우 잘 설명이 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낸다면 파나마 운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제 1관은 파나마 운하 건설의 배경과 운하 건설에 대한 역사가 소개되어 있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 대서양에서 태평양 (혹은 그 반대로) 배가 이동하기 위해서는 남미 최남단의 마젤란 해협 혹은 드레이크 해협을 통과하거나 아니면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엄청나게 먼 우회항로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파나마에 운하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이미 16 세기부터 시작되었다. 파나마를 식민지로 소유했던 스페인은 일찍부터 이곳에 운하를 만들겠다는 발상을 했다. 1529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곳에 운하의 필요성을 주장하자 스페인 초대 국왕이던 카를 5세는 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예상되는 운하의 길이는 77km 에 불과하지만 이 경로가 산맥으로 가로막힌 험난한 난관이 있는지라 실제 파나마 운하 공사는 1880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기술진에 의해 시작된다.

당시 프랑스의 운하 공사 총책임자는 페르디낭 드 마리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 1805-1894, 위의 사진) 로 그는 운하 건설을 위해 파나마 운하 건설 공사회사를 설립한다. 여기에 수에즈 운하 건설 성공 경험을 가진 엔지니어 팀을 불러 모았기에 처음에는 파나마 운하도 공사 성공을 낙관했다.

파나마 운하 건설 노동자들의 모습

그러나 이집트의 수에즈와 달리 파나마는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황열병, 말라리아가 창궐하여 공사도중에만 22,000 명에 달하는 인부들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 바위산을 뚫고 운하를 만드는 과정도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9년에 걸친 공사 끝에 시공 회사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공사가 절반 정도 진행된 상태로 회사가 도산하고 공사가 중단되었다. 책임자인 레셉스 역시 파산하고 정신 이상까지 일으켜 늘그막을 비참하게 지내다 죽는다. 

당시 파나마 운하 건설인부들의 가장 큰 사망원인은 모기가 일으키는 말라리아였다. 애초에 이곳은 말라리아 창궐지역이었고 운하를 파면서 생긴 구덩이에 찬 물에 모기들이 번식하면서 모기떼가 늘어났다. 게다가 당시에 인부들 사이에는 말라리아를 개미가 옮긴다는 잘못된 믿음이 퍼져 있어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개미를 막겠답시고 침대 다리마다 양철 그릇을 놓고 거기다가 물을 담아 놓았었는데, 그 물 담긴 그릇에서 모기가 더 맹렬히 번식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물이 마를 때마다 침대를 들어서 물을 비우기 귀찮으므로, 수위가 내려갔다 싶으면 그냥 웅덩이 물을 퍼다가 부어넣기만 해서 물은 썩어들어갔고, 모기가 번식하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 되었다. 숙소에 말라리아 병원균을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생물학적 무지가 낳은 비극이다. 결국 수많은 인부들이 말라리라에 희생되었고 공사는 중단되어 결국 프랑스는 파나마 운하 공사권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미국이 프랑스 회사로부터 운하굴착권과 기계, 설비 일체를 넘겨받아 공사를 재개한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 시 미국 해군은 대서양 함대와 태평양 함대로 갈라져 있던 전력을 유사시 운하를 통해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었고, 이런 전략적 이유로 인해 파나마 운하는 완공된 후에도 미국이 영구 소유권을 넘겨받기로 조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바로 "헤이-뷔노바리야 조약(Hay-BunauVarilla Treaty)" 이다. 그리고 당시 파나마를 지배했던 콜롬비아 정부가 미국의 파나마 운하 소유권을 거부하자 미국은 파나마 지역 주민들의 콜롬비아에 대한 불만을 배후 조종하고 전함 내쉬빌 호를 파견하는 등 파나마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결국 미군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1903년, 파나마는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자국의 방위와 이익을 위해서는 주변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 관점의 세계관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아무튼 파나마 운하 공사는 미국에 의해 재개되어 최초로 삽을 뜬지 34년 만인 1914년에 기어이 완공되었다. 미국이 공사를 맡고 난 후에도 6,000 명의 인부가 추가로 사망하여, 프랑스가 공사를 맡던 당시의 사망자를 포함 총 28,000 명의 인부를 희생한 끝에 파나마 운하는 완공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파나마 운하 박물관은 4개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층마다 각각의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서 본 파나마 운하 박물관 제 2관은 파나마의 자연과 동식물 생태에 대한 소개였다.  

주로 식물과 곤충의 박제와 사진자료들이었는데 이 곳은 대충 보고 패스했다. 전시 내용이 빈약하여 운하를 건설했지만 생태 보존에도 힘쓰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구색갖추기 용의 전시라는 느낌도 들었고.

태평양 바다를통해 이동하는 고래들의 루트. 고래들은 남극에서 파나마 연안까지 온다고

파나마 운하 제 3관은 운하가 실제로 어떤 식으로 컨트롤 되고, 이곳을 통과하는 배들의 운항 시뮬레이션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파나마 운하에는 총 3개의 갑문이 있으며 각 갑문의 폭은 110피트(33.5 미터)라서 폭이 106피트 이하인 선박만 이곳을 지날 수 있다. 그래서 폭 106피트인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선박을 "파나맥스(PanaMax)" 선박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배를 "수에즈막스" 라 한다)

파나마 운하의 갑문이 3 단식인 이유는 바닷물과 호수물의 높이 차가 달라서 갑문 안에 물을 채우거나 빼서 배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운하를 통과하는 동안 배는 예인선과 예인차량에 의해 끌어당겨진다. 배 한 척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면 약 8 시간이 소요되며, 평균 한 척의 배가 통과하는데 사용하는 운하 이용료는 약 5,000 만원 선이다.

 

제 3관에는 흥미롭게도, 파나마 운하 관제 센터를 본뜬 모형과 시청각 전시관이 마련되어 실제 운하 관제센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운하를 통과하는 배의 시점에서 본 카메라 뷰도 있어서 흥미를 자아낸다.

 

끝으로 제 4 관은 파나마 운하를 통한 무역 현황에 대한 소개였다.

파나마 운하의 완공으로 수 개월에 걸쳐 10,000km 이상 우회해야 하던 항로가 하루 거리로 단축되고 1914년 이래 누적 100 만 척 이상의 선박이 이 운하를 이용하며 대성공을 거둔다.  

운하의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으로 인해 미국은 85 년간 이곳의 운영권을 갖고 있다가 1999년 12월 파나마 정부에 이양하였다. 원 주인에게 운하의 운영권이 순리대로 돌아간 셈인데, 냉전이 끝나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만한 경쟁국이 나타나지 않아서 파나마 운하를 미국이 직접 관리할 중요성이 다소 줄어든 이유도 있는 것 같다.

파나마 운하 소개 문구 – "당신 집에서 사용중인 가전제품, 의류나 식음료 등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 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파나마 운하는 세계 해상 물류의 약 5% 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국가가 이 곳을 이용하나 그 중에서도 운하 이용 상위 5 개국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2. 중국 3. 칠레 4. 일본 5. 대한민국

 운하박물관 1층에는 파나마 운하 공사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는3D 영상물도 상영 중이었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박물관에서 이미 한번 본 내용이지만, 파나마 운하의 역사와 배경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운하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가장 옥상에 위치한 전망대에 가면 실제로 운하를 통과하는 배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배는 거의 매 시간마다 쉴새없이 운하를 지나기기 떄문에 아무때나 가더라도 운하를 통과하는 배의 모습은 쉽게 볼 수가 있다.

전망대의 모습.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갑문이 열리고, 전망대의 시야에서 보일때 까지 배가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분 남짓 하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운하를 통과할 때는 배는 시동을 끈 상태가 되고, 운하 양 옆에 궤도 차량이 배를 끄는 형태로 배가 운하를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운하에서의 수위 차가 있어 갑문 하나를 통과하면 그곳에서 물을 채워서 그 다음 갑문을 통과하는 형태로 배가 지나가게 된다.

파나마 최고의 관광상품이자 랜드마크는 뭐니뭐니 해도 파나마 운하일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운하를 만든 것에 그치지 않고, 운하에 박물관과 전시관, 전망대를 함께 설치하여 복합적인 관광명소로 만든 것이 인상적이었다.

 

파나마 운하 전망대

매일 운영, 운영 시간: 09:00 ~ 17:00

입장료: 성인 8 달러, 학생 5 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