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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 오르세 미술관 전 본문

리뷰/전시

국립박물관 - 오르세 미술관 전

soyoja 2014. 7. 7. 03:08

국립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오르세 미술관 전으로 소장품 170 여점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파리의 3대 미술관이라면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센터 를 꼽는데, 루브르는 고대 미술을, 퐁피두 센터는 현대 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 전후의 인상주의, 야수파, 상징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오르세미술관展 전시개요

- 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Ⅰ․Ⅱ실
- 전시기간 : 2014년 5월3일(토) – 8월31일(일)
- 전시대상 : 클로드 모네 ‘양산을 쓴 여인’ 등 19세기 후반 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오르세미술관 소장 프랑스 회화, 조각,드로잉, 공예, 사진 작품 175점
- 관람시간 : 화, 목, 금 09:00~18:00, 수, 토 09:00~21:00, 일, 공휴일 09:00~19:00
- 관람요금 : 성인 12,000원, 중고등학생 10,000원, 초등학생 8,000원, 
                 유아 5,000원, 65세 이상 6,000원(하나SK카드, 외환카드 1인2매 2천원 할인)
- 전시홈페이지 : http://www.orsay2014.co.kr

관람 요금은 성인기준 12,000 원인데 나는 외환카드로 결재하여 2000 원 할인을 받았다. 오르세 미술관의 진품을 직접 보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입장료는 아니라는 의견이 많던데... 오르세 미술관 측에 대여비로 지불하는 금액과 작품들에 대한 보험금을 생각하면 이정도는 되야 국립박물관 측도 적자를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워낙 관람객이 많아서 전시 자체는 충분히 흥행에 성공했다고 봐야 하겠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모네, 고갱, 고흐, 세잔, 루소 등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고, 또한 사진을 일찍부터 예술로 인정한 박물관 답게 사진 작품들도 다수 전시되었는데 주로 19세기초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 그 밖에 근대 파리의 건축물에 대한 모형과 도면등이 함께 전시되어 이번 전시회의 의의인 "근대도시 파리의 삶"을 보여주려 했다는 느낌인데. 사실 전시품의 숫자가 많지 않아서 근대 파리의 모습을 살펴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차라리 19세기 후반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전시를 했다면 어땠을지. 실제로 관람객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것은 고갱 고흐 르누와르 등 대가의 작품 앞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면에 대형 걸개로 눈에 잘띄게 광고가 진행중이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정말 사람이 많았다.

사람이 좀 적은 상태로 여유있게 관람을 하려면 수, 토요일의 야간관람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듯.

전시 컨셉은 근대 파리의 삶. 그리고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이다.

프랑스의 오르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이번 오르세 박물관전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이 사진은 전시관의 동향을 간직하고자 전시관 외부에서 안쪽으로 찍은 것.

 

도록은 소형 도록(8000 원) 과 대형 도록(25000 원) 의 두 종류가 있었다. 두 개의 차이는 대형 도록에는 전 작품의 설명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 소형 도록에는 주요 작품들에 대한 소개만 있다는 것. 그리고 대형 도록은 양장으로 무겁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전시회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도록 구입은 필수인데,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주최 측에서는 입장료 외에 이렇게 도록, 기념품 등을 팔면서 얻는 수익도 상당히 솔솔할 것 같다.

아래 적는 오르세 미술관전에 전시된 주요 작품들에 대한 소개는 기본적으로 도록의 내용을 참고로 했다.

 

1886년 여름에 그려진 모네의 이 작품은 2개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양산을 쓴 여인" 중 하나이다.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으로 이번 "오르세 미술관 전" 의 포스터를 장식한 그림이기도 하다. 작품속의 모델은 모네의 두번째 부인인 알리스의 딸 수잔 오세데이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구도로 그린 이 그림에서 모네는 모델의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하여 캔버스 위에 옮겨놓은 듯 하다. 아래에서 위를 보는 구도 때문에 움직이는 구름으로 활기가 더해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모델이 더욱 뚜렷하게 부각이 된다.

모네의 작품인 "노르웨이식 나룻배" 이다. 이 그림속의 인물들은 모네의 두번째 부인 알리스의 딸들로 서있는 소녀가 제르멘, 수잔이 왼쪽, 블랑뷰가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모네는 자신의 의붓딸들을 모델로 삼아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림 속에서 하늘은 전혀 표현되지 않고 있으며 강가에 비친 그림자가 상당히 정교하다. 모네는 미국의 화가 릴라 케벗 페리에게 "당신의 그림속에서 모델의 입이 코 아래가 아닌 눈 아래 배치되는 걸 보고 싶다" 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이 그림 속의 인물들을 자세히 보면 눈과 입만 그려져 있고 코가 없다. 모네는 "스스로 이해한대로 풍경처럼 만들어" 인물을 그려내는 것을 즐겼다.

에드가 드가는 발레리나를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특히 조각 작품들은 드가의 생전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고, 그의 개인 작업실 내에만 비치되어 있었다. 즉 그는 발레리나의 역동적인 모습을 연구하기 위한 습작으로 이들 조각들을 만들었다 한다. "회화나 드로잉에 더 풍부한 표현력과 열성과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나는 조각을 만든다" 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의 조각은 사후 매우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메러 커셋은 "화가 드가는 그보다 더 위대한 조각가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드가의 "쉬고 있는 두 명의 발레리나들" 이란 작품이다. 프랑스의 역사가인 다니엘 알레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의 오페라 극장은 공연장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의 역활도 했다. 드가는 평생 오페라를 드나들었는데, 이곳은 그에게 뜻밖의 사건이 펼쳐지는 축제의 장과도 같았다." 1860년대 부터 189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파리 오페라 극장의 공연과 리허설을 지켜보면서 발레에 대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이 작품은 드가의 말년에 그려진 것으로, 시력이 약해졌기에 형태를 도식적으로 단순하게 표현했고 강한 선을 이용하는 채색기법을 활용했다. 이 작품에서 인물의 얼굴과 팔, 등에서 이런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루소가 그린 이 그림은 인도를 다녀온 한 사업가의 이야기에서 유래햇다고 알려져 있다. 루소는 세관원으로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는데, 여기에서도 그의 독특한 개성이 나타난다. 그는 파리 식물원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식물원의 온실에 있던 인공 정글을 보고 이 작품속의 정글을 구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작품 내에서는 식물을 풍성하게 묘사하면서 중앙의 검은 여인과 배경의 달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미신을 가까이 했던 루소의 심미적인 예술성이 엿보인다. 루소는 이런 말을 남겼다. "불가사의한 주제를 다룬 작품을 그리고 있던 어느날, 나는 창문을 열어야 했다.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기 떄무닝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친구인 외젠 보흐를 그린 그림이다. 외젠 보흐는 벨기에 출신의 화가이자 시인으로 1888년 6월 반 고흐와 만나게 된다. 고흐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것은 보흐의 특이한 외모 때문이었다 한다. 고흐는 동생에게 말한다. "그림에는 내가 이 친구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반짝이는 별이 수놓는 호화로운 청색 배경은 반 고흐의 이상향을 떠올린다. 별의 무한성을 통해 예술적 창작력을 구현하려던 그의 생각은 이 초상화에서도 표현되고 있다. 고흐는 그의 다른 작품들인 "별이 빛나는 밤",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 등에서 밤하늘을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들을 그리곤 했다.

 

이 작품은 르누와르의  "조세 베르넹 전 부인과 아들 앙리" 란 작품이다. 르누와르의 인물화는 분명한 나름의 색깔이 있다.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풍만한 느낌이다. 그의 인물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왠지 편안한 느낌을 받곤 한다. 인물화 의뢰를 많이 받던 그는 이 작품에서 호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빈 공간이 하나도 없이 인물로 캔버스를 가득 매우는 기법을 구사한다. 초상화가 그려지던 시기에 3살에 불과하던 앙리(헨리가 아니다!) 는 르누와르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은 듯 하다. 그는 당시의 초상화 모델로서 화가에 대한 인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의 시선에서 얼마나 강한 기운이 느껴졌는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자주 눈을 깜박이며 자신의 그림을 전체적으로 판단하려 했다. 이럴 때면 매서운 그의 시선이 너무도 예리하여 차마 그를 계속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세살에 불과했지만 그 당시 화가에 대한 인상은 어린 앙리에게 뚜렷이 남아 있었다.

 1889년 만국박람회의 특징 중 하나는 전시관과 공원에 전기로 조명을 밝혔다는 것이다. 에펠탑에 빛을 쏘는 과감한 시도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판화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당시 만국박람회 최고의 볼거리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전시 작품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약간 아쉽기도 했다. 2시간 정도면 천천히 전체 작품을 다 둘러볼 수 있었다. 19세기 서양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놓치지 말고 찾아가 보자.